새로 나온 책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
(주)계림북스ㅣ글 황은희, 왕홍식, 김현숙 / 그림 이미진
8,800원
7,920 (10%↓)
79원 (1%)
184쪽 / 190 x 257mm
무선제본
9788953332768
2019-03-15
판매가능
총 금액 :

생생한 그림으로 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는 어린이 눈높이에 꼭 맞는 주제별 인물 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

유년 시절에 접한 훌륭한 인물들의 삶과 가치관은 미래를 향한 꿈의 한 조각을 수놓기도 해요. 에디슨을 통해 발명가의 조각을, 강수진을 통해 예술가의 조각을 마음속에 새기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요.
인물 이야기는 단순히 인물이 살아온 과정과 역사적인 업적만 살펴보는 게 아니에요. 그 인물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쓴 노력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 들이 생생하게 들어 있지요. 그래서 역사 속 인물들은 어린이의 좋은 꿈 선생님이 되어 준답니다. 꿈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하는 힘과 꿈을 향한 마음을 다질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올바른 인성을 기르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읽은 인물 이야기는 생각과 마음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줄 거예요.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은 자신의 안위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다섯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었어요.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곽재우, 나눔과 베풂의 삶을 실천한 거상 김만덕,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기여한 이회영,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민족 기업가 유일한, 빼앗긴 조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전형필의 삶이 녹아 있지요. 올바른 신념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쓴 다섯 인물들을 만나 보아요.


올바른 신념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을 통해 만나 보세요!

“왜적이 우리 마을에 언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섭다고 도망가는 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모두 죽는 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워서 마을과 나라를 지킵시다.” – 곽재우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장군 하면 이순신이 떠오를 거예요. 그런데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이순신 못지않게 큰 공을 세운 인물이 있어요. 바로 홍의 장군 곽재우이지요.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의병을 모아 나라의 위기에 정면 돌파했어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곽재우는 외할아버지의 친구인 남명 조식 선생 밑에서 공부하며 스승의 정신과 함께 실천의 중요성을 마음속 깊이 새겼어요. 곽재우가 40세가 되던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을 지켜야 할 관군과 관리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어요. 나라가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었던 곽재우는 곳간을 열어 의병들을 배불리 먹였어요. 그리고 곧 의병을 모으는 데 전 재산을 내놓았지요. 살던 곳의 지형과 지리를 잘 반영한 뛰어난 전술로 곽재우와 의병들의 활약은 계속되었고, 결국 정암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문불출한 홍의 장군 곽재우의 활약상을 살펴보며 나라를 향한 열정을 느껴 보세요.

“재물은 잘 쓰면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 김만덕
정조, 박제가, 정약용, 채제공 등 당대 뛰어난 학자뿐만 아니라 왕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 대한 글과 시를 남겼어요. 그 사람은 바로 조선 시대의 엄격한 신분 제도를 뛰어넘어 여성의 몸으로 장사를 해 큰 재산을 모아, 흉년으로 고통받던 제주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김만덕이에요. 지금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제주도에서는 ‘만덕 할망’이라고 친숙하게 불리지요. 제주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먹고살기 위해 기녀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했어요.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김만덕은 제주항에 객주를 차려, 제주 관리들은 물론 육지에서 온 관리나 상인들이 드나들며 육지 상황에 대한 앞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요. 믿음을 바탕으로 장사하면서 큰 부자가 된 김만덕은 1792년부터 시작된 흉년으로 굶주림에 죽어 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평생 모은 전 재산으로 쌀 500석을 사서 백성을 구하는 데 앞장섰지요. 김만덕의 선행을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가 알게 되면서 김만덕은 ‘의녀 반수’라는 벼슬을 받았고, 임금을 만난 제주 최초의 여성이 되었어요. 그리고 74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고 해요.     

“내가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는 조국을 되찾고 내 땅에서 자유로이 살기 위해서다.” – 이회영
조선 최고 명문가의 육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이회영은 형제들과 우애가 남달랐어요. 이들은 훗날 모든 재산을 내놓고 함께 독립운동에 나서게 되지요. 당시 명문가의 자제들이 과거를 공부하는 반면 이회영은 신학문을 접하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을 키워 갔어요. 청년 시절 이회영은 이상설, 주시경 등 청년 지식인들과 함께 구국 활동을 펼치는 데 앞장섰지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람들을 모아 집회를 열어 무효임을 널리 알릴 뿐만 아니라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비밀 특사를 보내기도 했어요. 또 안창호, 신채호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신민회를 만들어 독립 운동을 이어 나갔지요.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어요. 독립군을 키우는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3500여 명의 독립군을 길러내 일본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했지요.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이회영이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따듯하고 넉넉했다고 해요. 당시 ‘이회영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지 않은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이회영의 삶을 통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이름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입니다.” – 유일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조사에서 16년 연속 선정된 회사가 있어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예요. 이 회사의 모태가 된 유한양행을 설립한 사람이 바로 민족 기업가, 유일한이지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간 유일한은 라초이 식품 회사를 설립해 많은 돈을 벌어 성공한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달렸어요. 하지만 유일한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잘되고 있는 통조림 사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건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의약품을 판매하는 유한양행을 세웠어요. 유일한은 우리 기술로 좋은 약을 만들고 싶어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염증을 치료하는 ‘안티푸라민’이라는 연고를 개발했지요. 유일한은 기업의 이익만을 위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건강과 생명을 지켜 주는 민족 기업을 만들기 위해 애썼어요. 뿐만 아니라 유일한은 나라의 희망은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해 학교를 세워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지요.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으로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나라와 민족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어요.

“〈훈민정음〉은 우리나라 최고의 보물입니다. 이런 귀한 책은 그 값에 열 배를 더 주어도 모자랍니다.” – 전형필
보존 공사로 휴관 중인 성북동 간송 미술관의 반가운 재개관 소식을 접하며 우리 땅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게 해 준 간송 전형필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즐겨 읽던 전형필의 가장 큰 즐거움은 오래된 책방에서 책을 사 와 모으는 것이었다고 해요. 법을 공부하러 떠난 일본에서의 유학 시절은 식민지 백성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그 무렵 전형필은 서예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오세창을 만나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결국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을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쓰기로 결심하고, 한남서림을 인수해 옛 그림과 책 등을 후한 값에 사들였어요. 특히 고려 시대의 아름다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 시대 풍속 화가의 대가인 신윤복의 그림을 찾아왔지요. 전형필이 젊음과 전 재산을 다 바쳐 지켜 낸 국보 12점, 보물 24점 등 5천 여 점의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 곁에 영원히 숨 쉴 거예요.


⊙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은 어떤 점이 특별할까요?

1.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썼어요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은 어린이가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면서도 방대한 이야기의 맥락까지 잡을 수 있게 도와줘요. 짧은 글과 재미있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더욱 쉽지요. 어렵고 딱딱한 단어와 문장을 말랑하게 풀고 그림은 재미있고 생생하게 그려 어린이의 흥미를 끌지요.

2. 재미있는 이야기와 생생한 그림을 일대일로 맞췄어요
어린이에게 위인전은 많은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그림으로 보는 정의로운 인물들>은 인물 이야기를 읽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술술 읽히면서도 깊게 생각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구성했어요. 또 그림의 비중을 확 늘려 매 페이지마다 이야기 속 주요 장면과 핵심을 재치 있게 풀어내 생생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거예요.

3. 깊이 있고 재미있게 한국사를 공부하는 코너가 가득해요
본문 중간중간에 마련된 코너인 ‘한걸음 더’에는 어린이가 흥미 있어 할 만한 한국사 이야기가 가득해요. 이 코너를 통해 역사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각 인물과 관련된 유적지 곳곳을 소개하고 있어 인물의 삶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4. 역사 속 인물들의 업적과 생애가 담긴 연표가 들어 있어요
책의 끝장에는 본문에 나온 인물들의 업적과 생애가 담긴 연표가 들어 있어요. 그래서 역사 속 인물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생애뿐 아니라, 당시의 주요 사건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글 황은희(서울 창림초등학교 교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원 사회과교육과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창림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교육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2, 4, 5권〉, 〈어린이들의 한국사(공저)〉, 〈나의 첫 세계사 여행(공저)〉가 있습니다.

 

글 왕홍식(서울 보성중학교 교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뒤 현재까지 서울 보성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역사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고 늘 고민하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역사사랑’에서 20여 년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3년 중학교 교과서 〈역사 1, 2권(좋은책신사고)〉, 〈EBS 필독 중학 한국사〉, 〈EBS 필독 중학 세계사〉, 〈생각하는 세계사〉, 〈살아 있는 세계사 교과서〉등의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글 김현숙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덕수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소모임인 ‘역사사랑’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 1, 3권〉이 있습니다.

 

그림 이미진
어릴 적부터 그림책을 따라 그리거나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동화를 만들기 위해 그림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빵 굽는 아빠와 불량 아들〉, 〈앗, 도서관에 방우가 나타났다!〉, 〈또봉이 통장〉, 〈한국사를 이끈 리더〉, 〈달력에서 쏟아지는 역사〉 등이 있습니다.

 

 

 

 

 

1장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곽재우
• 큰 뜻을 품은 곽재우……12
-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어요
- 조식을 스승으로 모셨어요
- 과거 합격이 취소됐어요
- 임진왜란이 일어났어요
•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20
- 북을 쳐 의병을 모집했어요
- 첫 승리를 거두었어요
- 총알이 날아가는 거리를 알다
- 도적으로 몰렸어요
- 김성일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한걸음 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약
• 하늘에서 내린 홍의 장군……32
- 정암진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어요
- 여러 명의 홍의 장군
- 싸우지 않고 현풍성을 되찾았어요
-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어요
- 세상의 근심을 잊고 조용히 지냈어요
<한걸음 더> 곽재우를 기리는 의령 충익사

 

2장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 김만덕
• 제주에서 태어난 김만덕……46
-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어요
- 원하지 않는 기녀의 길을 가다
- 양인 신분을 되찾았어요
• 큰 상인이 된 여인……52
- 포구에 객주를 열었어요
<한걸음 더 > 조선 시대 객주란?
- 제주의 큰 상인이 되었어요
- 믿음을 바탕으로 장사의 원칙을 세웠어요
• 제주를 살린 김만덕……60
- 흉년에 제주 백성이 죽었어요
- 전 재산을 털어 500석의 쌀을 풀었어요
- 우리를 살린 이는 김만덕이로다
- 정조가 김만덕의 선행을 들었어요
• 김만덕의 평생의 꿈……68
- 벼슬을 받고 임금님을 만났어요
- 금강산 여행을 떠났어요
- 한양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어요
- 역사의 인물로 길이 빛나다
<한걸음 더 > 김만덕 기념관

 

3장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한 이회영
• 신학문을 배우다……80
- 조선 최고의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 육 형제가 서로 화합했어요
- 노비에게 존댓말을 썼어요
- 친구이자 동지인 이상설을 만났어요
• 구국 운동에 앞장서다……88
- 청년 학원을 열었어요
-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어요
- 헤이그에 비밀 특사를 보냈어요
- 신민회가 만들어졌어요
• 만주로 떠나다……96
- 육 형제, 가족회의를 열었어요
- 전 재산을 팔고 만주로 떠났어요
- 경학사를 만들고 신흥 강습소를 세웠어요
<한걸음 더 > 독립군을 키우는 신흥 무관 학교
• 독립운동에 앞장서다……104
- 고종 황제 망명 정부를 추진했어요
- 독립운동 방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 이회영의 집은 독립운동가의 사랑채
- 다물단과 흑색공포단을 지휘했어요
- 마지막 길, 만주로 떠나다
<한걸음 더 > 우당 기념관을 찾아서

 

4장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기업가 유일한
• 머나먼 땅 미국으로 떠나다……118
- 아버지의 희망
- 낯선 미국 땅에 도착했어요
- 한인 소년병 학교에 다녔어요
- 헤이스팅스에서 유명한 학생이 되었어요
•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다……126
- 고민에 빠졌어요
- 한인 자유 대회에 참가했어요
- 숙주나물을 판매했어요
- 라초이 식품 회사를 세웠어요
• 민족의 기업, 유한양행을 세우다……134
-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 유한양행, 민족의 기업으로 우뚝 서다
<한걸음 더> OSS와 냅코 작전
- 정치 자금을 거부했어요
•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다……142
-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어요
- 우리나라의 희망은 젊은이에게 있다
- 유일한의 유언장과 그가 남긴 물건
<한걸음 더> 유일한 기념관을 찾아서

 

5장 우리 문화유산 지킴이 전형필
• 큰 뜻을 품다……152
- 서울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어요
- 예술과 운동을 좋아하고 책을 즐겨 읽었어요
-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 오세창 선생을 만났어요
- 큰 뜻을 세웠어요
-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어요
• 문화유산 수집에 온 힘을 기울이다……164
- 한남서림을 통해 문화유산을 모았어요
- 아궁이에서 건진 정선의 그림
- 천 마리 학이 날다
- 영국인에게서 고려청자를 사들였어요
• 간송이 지킨 것은 우리의 정신이었다……172
- 경매장에서 한판승을 거두었어요
- 신윤복의 그림을 찾아왔어요
- 〈훈민정음 해례본〉을 목숨 걸고 지켜 냈어요
<한걸음 더 > 간송이 지킨 보물
- 우리 모두 문화유산 지킴이가 되어요!
<한걸음 더 > 민족의 얼이 담긴 간송 미술관
<부록> 정의로운 인물들 연보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1592년 4월 22일, 곽재우는 마을에 있는 큰 정자나무에 북을 매달았어요.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북을 치기 시작했지요. ‘둥둥둥’ 북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몰려들었어요.
“여러분 왜적이 우리 마을에 언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섭다고 도망가는 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모두가 죽는 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워서 우리 마을과 나라를 지킵시다.”
하지만 곽재우가 처음 의병을 일으켰을 때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수령과 관군도 도망갔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싸워?”
곽재우는 먼저 자신의 곳간을 열어 의병들을 배불리 먹었어요. 그리고 전 재산을 의병 활동에 내놓았지요. 이 소식이 널리 퍼지면서 곽재우를 따르는 의병은 차츰 늘어났어요.

 

전 재산을 털어 500석의 쌀을 풀었어요
제주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고, 시체가 길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여 갔어요. 당시 제주 최고의 부자였던 김만덕은 백성들의 고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지요.
“내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이웃들의 덕이다. 지금이 그 은혜를 갚을 때다.”
김만덕은 평생을 모은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고 육지에서 쌀을 사 오게 하였어요.
그리고 마침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사 온 쌀이 도착했어요. 김만덕은 500석 중 50석은 굶주리는 친척들에게 주고 나머지 450석을 관아에 보냈지요. 수레에 가득 실린 어마어마한 쌀을 보고 제주 목사는 깜짝 놀라 “이것이 다 무엇이냐?”라고 물었어요. 김만덕은 육지에서 사 온 쌀이라며,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라고 했지요.

 

신민회가 만들어졌어요
상동 교회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강연회가 열렸어요. 이때 전덕기 목사와 이회영을 비롯한 청년회의 간부 몇 사람은 교회 지하실에서 따로 모여 비밀 조직을 운영하였어요. 이 조직이 바탕이 되어 1907년 4월, 윤치호, 안창호, 신채호, 양기탁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비밀리에 ‘신민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신민회는 전국 각지에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했고, 서점 겸 출판사인 ‘태극서관’을 세워 국민 계몽에 앞장섰어요. 또한 도자기 회사를 세워 자금을 마련하는 등, 민족의 힘을 모으려고 노력하였어요. 신민회는 국내 활동에만 뜻을 두지는 않았어요. 나라 밖에 독립군 기지를 만들어 훗날 일본을 물리치고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으려 하였어요. 하지만 일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신민회를 향한 감시는 점점 심해졌어요.

 

민족의 기업, 유한양행을 세우다
유일한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조국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유일한은 잘되고 있던 통조림 사업을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무슨 일을 할까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의약품 사업이어에요. 당시 한국에는 약만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어요. 약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건강해야만 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20여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유일한은 1926년 12월 10일, 의약품 회사인 ‘유한양행’을 세웠어요. 먼저 결핵약, 피부병 치료제 등 꼭 필요한 약을 수입해 싸게 팔았지요. 신문 광고를 통해 어떤 병에 어떤 약이 좋은지 알려 주고 전문 의사와 약사의 이름을 적어 믿음을 쌓아 갔어요. 그리고 1936년에 유일한은 자신의 꿈이었던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만들었어요.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
유일한은 유한양행의 주식을 그동안 회사 발전에 힘쓴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어요.

 

문화유산 수집에 온 힘을 기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은 우리 문화재를 마구 파헤치고 일본으로 빼돌렸어요. 전형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로 마음먹었어요. 1932년, 전형필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한남서림’을 인수했어요. 한남서림은 서점이자 출판사로, 옛 책과 그림을 사고팔던 곳이었어요.전형필은 옛 그림, 책, 도자기 등을 사들일 때 값을 깎지도 않고 오히려 후하게 값을 치렀어요. 만약 팔려는 사람이 물건의 가치를 몰라 싼값을 부르면 두세 배의 돈을 주며 가치를 매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구하면 앞다투어 전형필에게 달려왔어요. 그러다 보니 한남서림은 책과 그림, 도자기를 팔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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